제1과 “느헤미야의 성벽 건축”
◎읽을 말씀 : 느 2:1-20
◎관련 찬송 : 342장, 384장
◎외울 말씀 : “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전하였더니 그들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”(느 2:18)
◎참고 말씀 : 느 6:15-16; 8:1-12; 13:1-31
◎목 표 : 1)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건축에 앞장선 느헤미야의 자세를 본받자.
2) 성벽을 건축한 후 단행한 종교 개혁을 살펴보자.
◎공부할 내용
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느헤미야는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 때 유다의 총독에 임명된 후 고국에 귀환하여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였습니다. 오늘은 느헤미야가 여러 가지 난관을 극복하고 예루살렘 성벽 건축과 종교 개혁을 단행한 일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.
1.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게 된 배경
아닥사스다 왕 제20년 기슬르월(1)에 느헤미야가 수산 궁(2)에 있을 때 유다에서 그의 형제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느헤미야를 찾아왔습니다. 느헤미야가 그들에게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묻자 그들은 “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(3)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”(느 1:3)고 말했습니다. 이 말을 들은 느헤미야는 며칠 동안 슬퍼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.
그로부터 4개월 후인 니산월에 아닥사스다 왕이 수심에 잠긴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고 그 원인을 물었습니다. 느헤미야는 왕에게 예루살렘 성이 황폐하게 된 것을 말하면서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을 건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겸손히 청원하였습니다. 그러자 왕은 이를 승낙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가 요구하는 다른 것들도 모두 허락해 주었습니다(참조, 느 2:1∼8). 하나님께서는 금식하며 간구한 느헤미야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.
2.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건축
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사흘 만에 밤에 일어나 몇몇 사람과 함께 나가 무너진 성벽을 살펴보았습니다. 그리고 유다 백성들에게 “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,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”(느 2:17)라고 말했습니다. 이어 그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그를 도우신 일과 왕이 그의 모든 요청을 허락한 사실을 말하면서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. 그러자 유다 백성들은 모두 힘을 내어 그 일에 협력하였습니다(참조, 느 2:18).
당시 대제사장인 엘리아십도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(참조, 느 3:1). 뿐만 아니라 성벽을 건축하는 일은 예루살렘에 거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, 그리고 사노아 주민 등과 같이 다른 지역에 거하는 사람들까지 적극 참여하였습니다(참조, 느 3:7, 13).
그러나 성벽 건축이 진행되자 호론 사람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를 비롯한 여러 반대자들이 성벽 건축을 방해하였습니다. 처음에는 “그들(4)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”(느 4:3)고 조소하더니, 성전 건축이 잘 진행되어 가자 “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”(느 4:8)라고 하며 방해하였습니다.
느헤미야는 이런 원수들의 방해를 막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(防備)하였습니다(참조, 느 4:9).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 성벽 건축 공사가 52일 만에 끝나게 되었습니다(참조, 느 6:15). 그러자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신 역사(役事)를 보고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습니다(참조, 느 6:16).
3. 성벽 건축 후 단행한 종교 개혁
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기 원하여 수문 앞 광장에 모이자 에스라는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해 주었습니다. 그러자 백성들이 다 울며 크게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(참조, 느 8:1∼9). 그리고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여호수아 시대 이후 초막절(5)을 가장 잘 지키게 되었습니다(참조, 느 8:13∼18). 뿐만 아니라 백성들은 초막절이 끝난 후에도 다시 한 자리에 모여 금식하며 자기 죄는 물론 조상들의 죄까지 자복하고, 이방인들과 맺은 부정한 관계를 청산하였습니다(참조, 느 9:1∼2).
그 후 12년 간에 걸친 총독 재임 기간이 끝나고 일단 바사 제국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귀국한(참조, 느 13:6∼7) 느헤미야는 자신이 예루살렘을 떠난 사이 영적으로 침체된 백성들에게 다시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.
첫째로, 느헤미야는 제사장 엘리아십이 암몬 사람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것을 알고 도비야의 세간을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그 방을 정결하게 한 후 그곳에 하나님의 성물을 들여 놓았습니다(참조, 느 13:4∼9).
둘째로, 느헤미야는 얼마 전에 확립된 바 있는 십일조(참조, 느 12:44∼47)를 백성들이 바치지 않자 레위인들의 상당수가 성전 봉사의 직무를 포기한 채 다른 생업에 종사하도록 방치한 민장(6)들을 꾸짖었습니다.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바치도록 촉구하며 그 관리 책임자를 임명함으로써 레위인들이 다시 성전 봉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(참조, 느 13:10∼14).
셋째로,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가차없이 사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율법(참조, 출 20:8∼11; 31:12∼17)을 무시하고, 백성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안식일을 범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엄히 꾸짖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하였습니다(참조, 느 13:15∼22).
넷째로, 느헤미야는 이방인들과 혼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서도(참조, 느 10:29∼30) 이를 어긴 자들에게 “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”(느 13:27)라고 꾸짖었습니다. 그리고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유다 백성들의 대적인 산발랏의 사위가 된 것을 알고 쫓아내 버렸습니다(참조, 느 13:28). 이처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영적 부패들을 과감히 척결하며 종교 개혁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.
◎성경 연구
1.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방해하는 원수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습니까(느 4:9; 공부할 내용 참조)?
2. 12년간에 걸친 총독 재임 기간이 끝나고 바사 제국으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귀국한 느헤미야가 단행한 종교 개혁은 무엇입니까(공부할 내용 참조)?
◎나눔과 적용
1. 주님의 일을 하는 동안 마귀의 방해를 물리치고 승리한 경우를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.
2. 당신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개혁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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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) 기슬르월 : 바사(페르시아)어로 추정되는 이 단어는 11, 12월경을 가리키는데,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시대(B.C. 586-539) 이전에는 사용한 흔적이 없으며, 본 절과 스가랴 7장 1절에만 등장한다.
2) 수산 궁 : 아닥사스다 왕이 겨울에 기거(起居)하는 궁전을 가리킨다. 한편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마시는 일을 관할하는 술 관원으로서 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왕궁에서 생활하였다(참조, 느 1:11).
3)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 : 포로에서 풀려나 고국에 귀환한 유대인들을 말한다.
4) 그들 : 유대인들을 말한다.
5) 초막절(草幕節) :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 하나로 수장절, 장막절이라고도 한다. 이 절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한 후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로서 토지 소산을 추수한 후 지킨다.
6) 민장(民長) : 당시 백성들 중 지도적 위치에 있던 유력한 자들로서, 이들은 십일조를 바치는 데 있어서 백성들을 독려하는 임무를 소홀히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들도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에 느헤미야가 꾸짖었던 것이다.